[학생] 자유게시판

이걸 '조언' 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하간 대학생으로서 고민하고 있는 바를 나누는 것이 고등학생, 중학생 여러분이 인생의 갈피를 잡는 데 손톱만큼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나눕니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해야 한다'라는 말에 대해서 요즘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런 말을 '선배'랍시고 학생들에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뭐, 뒤져보면 나름의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인기 있는 분야에는 한정된 수요에 사람이 몰려서 그 넓어 보이던 길이 결국은 좁은 길이 되어 버린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걸 하지 않으면, 흥미를 붙이고 최선을 다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으니 이런 경쟁에서 성공할 확률이 되려 낮다는 것. 인기 없어 보이고 좁은 길 같아 보이는 분야에는 어차피 사람들이 덜 몰리니, 확률로 따져 보자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내가 좁은 길을 좋아서 간다면, 적어도 그 내부에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라는 것.

혹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설득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삶이란 건 현재를 사는 것 아닌가. 지금 삶을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자꾸만 오지도 않은 미래의 안정을 준비하는 것이 과연 옳은 태도인가. 그까짓 토익 공부 한답시고 방학 동안 연애도 여행도 못 해보고 살다가 방학이 다 지나 시험 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이면 토익 만점이 무슨 소용인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삶을 누리는 것이 옳다라면, 공부도 마찬가지로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등학교 때야 딱히 선택권이 없다라지만 대학은 분명 선택의 여지가 있잖은가. 게다가, 나의 미래가 취직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어차피 취직하면 학부때 배운 거 다 쓸모 없다지 않은가. 스펙에 목매는 취업준비생들과의 예상과는 달리 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인성이고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연구도 있는데, 기왕 그렇다면 대학에서의 공부는 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얼마만큼 현실적인 말인지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걸 하면 다 잘되리라~ 라는 '민사고 출신 하버드 졸업생' 박원희의 <공부 9단, 오기 10단> 및 <스무살 청춘, A+보다 꿈에 미쳐라>, 또는 '경북과고 출신 하버드 졸업생' 금나나의 <나나 너나 할 수 있다> 류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이들이 저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이들의 노력 외의 다른 요소들 또한 작용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앞으로의 삶에서 이들이 계속에서 탄탄대로를 걸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지 않습니까.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나은 기회를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세상살이에는 많은 우연이 작용하고 이들은 대부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대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에는 이런 우연적인 요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넘어갑니다. 각자가 너무나 힘겹고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되려 실제로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해라'라는 말이 먹히는 때는,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와 상관 없이 나에게 기회를 열어 줄 기타 다른 요소들이 존재한다거나,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마침 시대의 요구와 일치하는 경우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배울 때 즐거웠대도 그 결과가 기대에 한창 못미친다면, 배웠던 걸 배워서 즐거웠던 과거는 한낱 철없던 시절의 방황으로 압축되어 기억에 저장되는 게 아닐까. 좋았던 과거가 현재를 좋게 하는 것이 아닌데, 그럼 결국 소용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후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결국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위로 또는 아큐의 정신승리법이 최선인 건가. 참 생각하면 할수록 삶을 놓고 다른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을 던진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 뿐입니다.